글 쓴 사람: Sun.kid
도쿄 출생, 관동지역 출신
도쿄의 대학원생
사랑 #평화 #예술 #자연 #세계 #사랑 #평화
영어는 미국 영어파.
디즈니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
만약 섭리의 말씀을 배우지 않았다면…
만약 선생님(정명석 목사)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현실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에도 뿌리를 두고 있는 저는 어릴 때부터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래에는 각국의 문화와 문화를 잇는 평화의 가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나를 보호해 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장벽이 된다고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중국인이라 싫어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거나 ‘주변 환경 때문에 불행한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 사람을 보는 눈이 비뚤어지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밝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항상 마음속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저의 마음은 ‘평화’와는 너무 멀고, 오히려 황폐한 마음으로 10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기독교인으로 살아왔고, 교회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수없이 들어왔던 저였지만, 그 근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섭리 선생님의 말씀을 만난 것이 바로 이 때였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저는 제 마음을 거울에 비춰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 취급설명서>라고도 합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하나님에 대해 배우면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대로 됐습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갈등의 씨앗’이 되는 요소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실제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3-5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대들보… 건물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물)
과거에 저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 ‘불만’을 느낄 때가 많았고, ‘일본 사회는 인종차별이 심각하다’, ‘저 사람의 교만한 태도, 정말 화가 난다’며 타인과 환경을 탓하고 비난과 지적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위의 성경구절처럼 선생님은 말씀으로 ‘먼저 자신을 점검하라’고 말씀하시며, 일이 잘 안 풀릴 때, 문제가 생겼을 때, 힘들 때, 괴로울 때, 먼저 “나에게 문제가 없는가?”를 자기 마음에 물어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일본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열등감’, ‘분노’, ‘소외감’, 더 나아가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식이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주변을 적대시하거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원인이 되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삶이 힘들어진 것은 주변이 원인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 사고방식, 삶의 태도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평화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스스로를‘상대방에겐 친절하게’, ‘관대하게’, ‘그릇이 큰 사람’ 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외면하고 싶은 본성,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성격과 사고방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데…”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때 구원이 된 것은 역시 선생님이 전해주신 예수님의 말씀이였습니다.
선생님은 제 안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문제점을 알고 나서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는데, 그 실천의 핵심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6~40절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즉,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는 것, 그리고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실천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했을 때, 제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반드시 나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삶 속에서 반응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제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확신하게 되면서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음의 벽을 만들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께 말씀을 배우면서 제 안에서 일어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이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런 것들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엔 정말 어려운 것들입니다. 저 자신도 제 안에 있는 ‘편견’, ‘피해의식’, ‘시기심’, ‘원한’, ‘원망’ “등의 성격을 고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지금도 고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아야 ‘나처럼 상대방도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2000년 전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실천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몸부림치고,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성품을 만들고, 고치고, 인격을 다듬는 노력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든 마음의 발판 위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평생 실천해 오셨습니다. 그 자세는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생명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정말 설득력이 넘칩니다. 또한 몸부림치며 실천하셨기 때문에 제가 몸부림치는 그 마음도 잘 이해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항상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정말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된 이후, 저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마치 <수술→재활>을 반복하는 것과 같고, 때로는 스스로를 자르는 듯한 아픔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닙니다.
저는 혼자서 제 문제를 마주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항상 삶 속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동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마음의 갑옷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벗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한 만큼 삶의 괴로움을 느끼는 일이 줄어들었고,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제 마음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 해결되고, 불안정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점점 평화로워졌습니다. 섭리를 만나고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를 만드는 일에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항상 제 안에 다시 만들어야 할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아직 만드는 과정 중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무한히 성장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쳐 나가는 것이 이제는 삶의 큰 보람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전문적으로 분쟁해결학과 평화 구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평화를 위한 학문적 이론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가슴이 뻥 뚫리도록 알려주는 사람이나 책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명석 목사님은 평화실현을 이론으로만 끝내지 않고 말씀의 실천을 통해 그 노하우를 현실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실천 철학입니다.
선생님은 ‘온전한 사랑이 진정한 평화의 세상을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과 실제 행하는 모습을 통해 그 근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평화로워진다는 것을 제 자신의 변화를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헌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That since wars begin in the minds of men, it is in the minds of men that the defenses of peace must be constructed”
“전쟁은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방어를 구축해야 된다”
출처:UNESCO 공식 홈페이지
https://www.unesco.org/en/legal-affairs/constitution
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강력한 실천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어려운 실천이기도 합니다.
그 증거로 이 유네스코 헌장이 발표된 지 올해로 무려 78년이 지났지만, 요즘 세계와 사회 정세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화의 길’이 만들어졌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눈에 보이는 ‘전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하면 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그런 ‘나’가 많이 모이면 사회에 더 큰 변화와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섭리교회에서는 그 생각과 정신, 마음가짐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을 매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격도, 출신도, 생각과 가치관도 천차만별인 친구들이 모인 큰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평화를 이루는 기적 같은, 꿈 같은 현실을 이곳에서 매일, 현재진행형으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을 실체로 보여 주시는 정명석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께 배우는 말씀이 참으로 진리임을 확신합니다.
언젠가 이 말씀을 만나는 당신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평화의 씨앗이 뿌려지기를 바랍니다.